한 청년이 자신의 막막한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도무지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함께 아파하며 한숨을 쉽니다.
마땅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이럴때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제게는 그런 약속 중 하나가 이사야 8장입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두려워하며 술렁이던 때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만군의 여호와 그분을 두려워할 자로 삼으라 하십니다.
두려움을 없애 주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두려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이 약속을
다시 기억하고, 주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약속은 받았는데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시간.
그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헛된 꿈을 꾸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신앙은 신앙대로, 세상은 세상대로 나누어 살게 됩니다.
광야에서 다윗이 나발의 조롱을 듣고
그토록 분노한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름 부음은 받았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자리.
남의 마당에서 양식을 구해야 했던 사람에게,
사울에게 도망쳐 나온 종이라는 말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지난주 원주에서 김병호 교수님의 전시
〈이미와 아직의 시간〉이 열렸습니다.
딸의 임신 소식을 들은 뒤,
아직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생명이
어느새 삶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더라는 고백에서 시작된 전시입니다.
저는 여기에 열세 편의 AI 영상으로 함께했습니다.

만난 적 없는 생명의 태동을 그려야 하는 작업이라
심장의 고동 소리와 붙잡히지 않는 추상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형상은
오히려 보는 사람의 상상을 가둘 것 같아서 입니다.

전시장에서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글과 그림, 영상을 통해서 곧 실재로 만나게 될 생명을 상상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우리에게 여러 약속들이 있습니다.
대개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실재라고 부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런데 심장 소리를 듣거나 태동을 느끼는 순간에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이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본능으로 압니다.
어쩌면 믿음도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과의 동행을 가까이 느낀다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로 기울게 될수록
믿음이 더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존재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시간속에서,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이름과 같습니다.

전시가 끝나고 며칠 뒤,
전시의 주인공이었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여 있던 시간이
이제 구체적인 얼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더웠던 여름의 계절이하고 있는 일을,
막막한 오늘을 둘러싼 수많은 약속들을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겠습니다.

<노래하는풍경 #1639 >

이미와아직의시간 #선물같은인생 #보이는것너머